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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성규 독립운동가 2019-02-08 12:3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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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규독립운동가

광복군으로 항일운동을 했던 오성규 애국지사, “억지로 화해를 할 필요는 없어. 그렇다고 청년들에게 일본과 싸우라고 해서도 안 돼. 시간이 흐르면 한일 관계가 더 나아지겠지. 하지만 요즘 친구들이 역사를 잊는 일은 없어야지."

역사를 잊으면 미래가 없다.


"일본과 싸우란 얘기는 아니야..하지만 역사는 알아야지"
광복군 입대해 항일운동한 일본 거주 오성규 애국지사 인터뷰
피우진 보훈처장, 오성규옹 자택 방문해 건국훈장 애족장 수여

"아주 간단한 얘기야.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해서 괴롭히고 있는데, 나라를 되찾아야지. 그 생각뿐이었어. 그래서 광복군에 들어간 거야."

일본 도쿄(東京) 네리마(練馬)구의 자택에서 만난 오성규(90) 옹은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총을 들었던 이유에 대해 짧고 분명하게 설명했다.

그가 중국 충칭(重慶)의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한 것은 중학교 졸업을 반년 앞둔 16살 때였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일제에 주권을 빼앗긴 조국의 현실에 눈을 뜬 그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사촌 형의 권유를 받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충칭으로 향했다.

그리고 낙하산 훈련을 받으러 가던 중 꿈에도 그리던 광복 소식을 들었다.

해방 후 북한의 공산주의 정권도, 이승만의 남한 정권도 싫었던 그는 중국과 일본을 오가다 일본에서 아내를 만났고, 일본 땅에 터전을 잡았다. 우리 정부는 1990년 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그는 광복군 입대 당시의 심경에 대해 "'잡히면 어떻게 하나. 전쟁터에서 일본군과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같은 생각은 할 여유도 없었다"며 "'일본놈'들의 통치를 더 이상은 받을 수 없다. 식민지에서 벗어나서 독립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일제에 주권을 빼앗긴 조국의 현실에 눈을 뜬 그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사촌 형의 권유를 받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충칭으로 향했다.



그리고 낙하산 훈련을 받으러 가던 중 꿈에도 그리던 광복 소식을 들었다.

해방 후 북한의 공산주의 정권도, 이승만의 남한 정권도 싫었던 그는 중국과 일본을 오가다 일본에서 아내를 만났고, 일본 땅에 터전을 잡았다. 우리 정부는 1990년 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그는 광복군 입대 당시의 심경에 대해 "'잡히면 어떻게 하나. 전쟁터에서 일본군과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같은 생각은 할 여유도 없었다"며 "'일본놈'들의 통치를 더 이상은 받을 수 없다. 식민지에서 벗어나서 독립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식민지에서 벗어난 뒤의 역사가 아직은 짧다"며 "일부 일본 사람들이 한국을 과거 식민 지배했던 국가라는 생각을 여전히 갖고 있고, 한국인들은 일제의 만행을 기억하고 있는데, 이런 생각이 사라지려면 적어도 100년은 걸리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가 광복 후 일본에서 사는 중에는 정권이 바뀌며 과거사에 대한 태도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인터뷰에 동석한 둘째 아들에 따르면 피 처장 같은 정부 인사가 방문한 것도 지난 십수 년 사이에 없었다.

그에게 과거사에 대한 기억이 흐려진 요즘 한국 청년들에게 해줄 말이 있는지 물었더니 "억지로 화해를 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한국과 일본이 싸우는 것도 좋지 않다"는 말이 돌아왔다.

"억지로 화해를 할 필요는 없어. 그렇다고 청년들에게 일본과 싸우라고 해서도 안 돼. 시간이 흐르면 한일 관계가 더 나아지겠지. 하지만 요즘 친구들이 역사를 잊는 일은 없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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